여행이란 무엇일까?
아무튼 떠나라
다다를 데 없는 그 지점에서 일어서라
그것이 소생이다
김시종 <내일> [계기음상]
회사에서 일할 때는 주말에 그렇게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지.
정말 일만 죽도록 해야 했어.
일이 다 끝난다 하더라도 방송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쉽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지.
어쩌다 쉬는 날도 여자친구 만나느라고 완전히 쉬는 것도 아니고.
절실하게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댈 수 있는 시간을 원했었어
지금은 모든 부담을 떨쳐 버렸기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내 의지대로 보이는 곳 중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있다.
이제야 시간의 주인이 된 느낌이다.
태평양을 건너 영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야 이런 감정을 느낀다
침대에서 빈둥댈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내가 찍은 사진에 스스로 대견해할 때, 난 커다란 만족감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을 준 여행에도 분명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문득 순간순간 이 생활에 대한 회의가 든다.
-지금은 이렇게 좋지만 내가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여행도 결국에는 온 몸으로 느끼는 소비의 일종이 아닐까?
-소비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 일을 해야 하는 건가?
20대에 불같은 사랑, 내 삶에서 그건 여행이었다. 한 때는 평생 여행을 하며 살고 싶었다.
30대가 되서 일도 하고 좀 더 세상을 본 결과, 여행을 하면서 평생을 살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사회를 벗어나 혼자서 살 수는 없다. 그가 아무리 예수라도 그의 의견을 들어 줄 사람이 있어야
사람인 것이다.
또한 본인의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선 이 사회에선 돈을 벌어야 한다. (아님 월든처럼 혼자서 낚시하고 집 짓고 살던가)
여행을 하면서 돈을 번다?
20대에 대학을 중퇴하고 각 워킹홀리데이 협약을 맺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여행하는 친구들을 봤다
아예 머리를 드레드로 바꾸고 스스로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면서 살아가는 히피들을 봤다
움막을 만들고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하는 히피도 봤다
그런데 그 삶이 지속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20대가 끝나도 워킹을 할 수 있는가? 어딘가에는 정착을 해야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히피처럼 한 자리에 눌러 앉아버리는 걸 더 이상 여행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가?
오랜 여행으로 내가 깨달은 건 여행은 결국 생활이 있을 때 여행의 가치가 생긴다는 점이다.
생활이 있어야 여행이 있고 여행이 있을 때 생활이 있다.
마치 음과 양처럼.
여행이 빛인 줄 알았건만 그것은 환상이었다.
생활이 음지에서 떠받치고 있을 때 가능하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생활에서 나오는 돈이 있을 때 여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행도 예전처럼 가슴이 터질 듯한 설렘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소소한 만족과 설렘이 있기는 하다. 확실히 피디생활할 때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 가서 나의 몫을 다해야 한다.
다시 또 피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혀 온다. 이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이기심에
진절머리가 난다. 자기 일만 해서는 방송의 퀄리티가 나아질 수 없기에 조금 더 많이 요구해야 하는
나의 입장과 정해진 일을 하려고 하는 그들의 입장. 어느 순간 나의 것을 훔쳐가는 익명의 사람들.
그들을 조절해야 하는 그 일을 다시 또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줄 아느냐 하면 그것도 딱히 생각나는 것도 지금은 없고.
방황의 시기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