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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7. 00:50 latin america/칠레

레비스트로스의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라는 대담집을 읽고 구조주의에 급 흥미를 느꼈다.


도서관에서 구조주의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다가 흥미로운 우화 하나를 발견했다


'먼 옛날 두 사람의 영감이 나란히 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뺨에 큰 혹이 달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영감이 산에서 비를 만나 나무 동굴로 몸을 피했는데 도깨비들이 나타나 연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움에 벌벌 떨었지만 차츰 흥에 겨워 함께 춤까지 추었습니다.


 영감의 춤이 마음에 든 도깨비들은 영감에게 '내일도 오시오 이건 담보로 맡아두지'라고 말하며 혹을 떼어


서 가져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웃집 영감이 다음 날 산으로 올라가 도깨비를 만나 춤을 추었지만 그들은 영감의 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름 한 쪽 뺨에 혹을 달아주었습니다.'


여기엔 어떤 논리적 구조도 없고 인과율도 없다. 그냥 알 수  없는 존재인 도깨비가 있을 뿐이다. 


도깨비는 이용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구조주의자인 레비 스트로스는 


 이 도깨비를 통해 세상은 분절되어 있다


그 세계의 분절은 내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끝나 있고 나는 어떤 이유에서, 어떤 기준으로 분절이 이루어졌는지 소급해서 알 수가 없다.


또, 이 세상에는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는 도깨비가 있고 세계가 이미 차별화되어 있다는 진리를 학습시킨다.


마치 우리가 나오기 전 언어가 자의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저 산에 있는 고동색 식물을 나무라 일컫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왜 그 식물을 나무라고 부르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나라는 존재가 나오기 전부터 그것은 나무라고 불리고 있었다.


사실 이 우화를 들으면서 남미 여행하면서 만났던 한 사람과의 우화가 생각났다.  


그 사람은 남미여행자에게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한 차례, 책도 낸 적 있는 사람. 그런데 그 책을 보고 블로그를 통해 몇 번 얘기를 나눴고 결국 멕시코시티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왠 걸.... 나랑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기를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굉장히 강하고 좋고 싫음이 너무나도 분명한.....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 분 출신이 이공계여서 그런지... 사회나 인간, 문명에 대한 관심이 참으로 적은 사람이었다.  인문계인 나랑은 확실히 다른 사람이나....여행자라는 측면, 한국인이라는 것 빼고는 나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 사람에게서 묻고 물어서 안전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멕시코, 과테말라 여행을 햇는데...하다가 


그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지금도 멕시코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지워지지 않는 사건....


똑같은 길을 가고 똑같은 대책을 세워갔지만 그 인간은 세상이 혹 하나를 떼어가주었지만 나에게는 혹 하나를 더 붙여준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무진장 노력했다. 가능한 이유만 해도 수십가지였다. 망할 인간이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줘서 그렇게 됐다. 과테말라에서 하루 더 일찍 출발하지 않아 이 사단이 났다. 내 부주의가 컸다. 너무 피곤했다. 이게 인연이다..... 등등.....


그러나 위 우화에서 도깨비가 제 멋대로 한 것처럼 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의미 또한 시간이 지나고 어떤 텍스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계속 바뀐다. 실존주의를 만나면 ' 헤밍웨이처럼 극복하고 저 바다로 가자'가 되고 구조주의를 만나면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에....멕시코가 그런 곳이기 때문에가 된다. 불교를 만나면 이게 내 카르마이기 때문에가 된다. 


본래적 의미는 없다. 트라우마처럼 계속 일정한 상황만 되면 바뀌면서 나타나는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인생의 뜻을 결코 알 수 없을 거라고. 그저 지나간 다음에 그게 무슨 의미이었을까를 심사숙고할 뿐,  주체의 무한한 확장을 중시하는 실존주의에서 벗어나서야, 나는 평안을 찾았다. 세계와 나의 관계가 수립된 느낌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리고 구조주의라는 사상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내가 그 사상의 모든 것을 숭배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구조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도, 세계를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받아들이나, 인간이 구조 속에 포함되어 버린 위축된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가 본 인디언들도 자연과 사회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고 그의미의 깊은 뜻을 탐구해갔듯, 나 자신 또한 사회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더욱 탐구할 것이다. 그 나라고 하는 것도 어차피 고정 불변의 존재가 아닌 것을....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킬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객체는 아니다. 










뭔가.....야밤에 맞는.... 쓸쓸한 사진 고르려 하다가 그냥 산티아고 사진 골랐다. 사진을 보니 또 새로운 마음이 샘솟네....여기 있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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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