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나도 영화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like a movie star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들롱처럼
위태롭지만 강렬한 청춘이 되고 싶었지.
이 사진의 주인공들처럼.
영화에 나올 한 장면을 완성하고 싶었지.
때로는 히피가 되기도 하고.
카메라 하나만 들고 세상을 유랑하던 날들.
최저낙원에서의 생활은 달콤했어
미친듯한 기타 연습의 날들.
존 메이어처럼 될 수 있다면.
열망의 나날들.
나는 내가 갖지 못했던 모든 것을 열망했다.
토니 몬타나처럼.
상상에는 한계가 없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엘도라도를 찾아 나서는 인디아나 존스였고
기타를 잡은 나는 존 메이어였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서투른 청춘이었다.
여행은 내 청춘의 레지스탕스,
형벌의 집행유예였다.
여행하는 순간만은 내 자신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린 왕자 시절의 나로.
이 곳에서만은 시라노처럼,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이처럼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처럼. 시네마천국의 토토처럼.
당하고 살지는 않겠지.
멋지게 살 수 있다고
믿었었다.
어리석게도.
중남미 여행은 달랐다.
멕시코에서부터 우수아이아까지.
어디선가 본 듯한 이주민들의 도시가 이어졌다.
그리고 범죄가 있었다.
어느 도시를 가도 범죄에 당한 사람 한 둘은 꼭 나왔다.
순수한 세계,
꿈과 모험의 세계는 없었다.
여행이 점점 무의미해졌다.
20대를 수 놓았던 아시아를 생각한다.
아시아 여행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였다.
사람을 돈으로 보지 않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해주는
현지인들. 그들과의 만남.
전혀 본 적없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내 존재를 무한히 확장시켜 주었다.
여기에 중남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제는 꿈을 깨고, 현실을 보라고.
아시아 여행을 했을 때 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여행 후에도 돌아올 곳이 있었고
소속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나는 좋게 말하면 백수
말죽거리 잔혹사의 천호진의 말에 따르면
잉여인간이다.
세상에 저항하고자 했지만
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
그게 나의 현실이다.
여행은 언젠간 끝난다.
운이 좋아 다시 순수의 세계를 만날 수 있더라도
거기에서 평생을 살 순 없다.
나는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이니까.
그들에게 결국 나는 이방인이니까.
이제 여기서 살아야지.
지난 3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게임의 법칙을 실천하며
수단과 방법보다는 결과를.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걸.
다시 죽임 당할바에야 차라리 죽여버릴래.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내 지난 날이 떠올라 끄적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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