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살인의 추억은 믿음에 관한 영화였다.
직감을 믿고 행동하는 박두만.(내 눈 봐봐. , 내 눈깔은 못 속여요. 등등..... 대사에서 확인 가능)
서류를 믿고 행동하는 서태윤(보세요. 서류는 거짓말 안 한다니까요)
이 둘은 연쇄살인이라는 한 사건에 대해 각자의 믿음에 따라 다른 행동방식을 취한다.(경험에 따라
범인을 무모증이라고 단정하고 목욕탕을 전전하던 박두만, 증거와 서류에 따라 범인의 행동동선을 체크하
는 서태윤)
그러나 자신의 경험과 믿음만으로는 감당하기엔 사건은 벅차다.
이 둘은 서로 혐오하던 방식을 서서히 받아들인다. 끝내 범인의 실마리를 잡는 듯 했으나
그 융화된 믿음조차 종국에는 처참한 현실에 의해 산산히 흩어진다.
대학교 1학년일 때 이 영화가 나왔다. 좋아할만한 장면이 참 많은 영화였다. 그 당시에는 머
리에 남는 잔상에 따라 좋아하는 씬만 반복재생했었다.
그런데 10년 후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다른 점들이 보였다. 앞에서 믿음에 따라 살인의 추억을 해석한 건
10년 전과 달리 영화를 보는 시선에도 내 경험이 투영되어서겠지.
폭발하는 젊음, 가도 가도 끝이 없던 신세계, 여행은 내게 발견의 기쁨과 경이로운 세상으로 접속할 수 있
게 해주는 키워드였다.
인도, 미얀마, 이란, 중앙아시아. 이 곳에서 나는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나라였으면 국보급으로 꼽히고 박물관에 진열되 있을만한 유적들이 이 나라들에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래서 더 세상에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언제 새 세계가 펼쳐질 지 몰라. 이러면서.
그러나 내 믿음은 멕시코에서 산산히 부숴졌다.
그건 한 세계가 부숴지는 아픔이었다.
비단 멕시코의 일 뿐 아니라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나는 여행자애갠 근본적인 언어의 한계가 있음을 통감했
다.
중남미에서 나는 결국 현지인들과 친해질 수 없었다. 전의 글에서도 썼지만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나는 아시
아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노스탤지어, 향수의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위험한 세상은 나를 계속 게스트
하우스 안으로 몰아넣었다. 아시아에서 언어의 힘 없이도 진심이 있다면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느꼈다.
말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지만 중앙아시아, 이란에서 나는 무수한 초대를 받았었다. 더불어 참 많은 환대를
받았었다.
그러나 중남미에서는 아니었다. 외지인들이 와서 다 때려부수고 스페인화 도시를 연달아 세운 이 나라의 역
사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그게 내 팔자였을까?
뭐, 알 수 없다. 이런 나와 달리 중남미를 아시아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중남미야말
로 천연자연의 보고, 엘도라도라고 믿고 있다. 누가 맞다고 얘기할 순 없다. 모든 여행은 개별적인 체험이
니까.
그들의 믿음과 나의 믿음, 둘 다 하나가 절대적으로 맞다고 우길 수는 없다.
살인의 추억에서 결국엔 서태윤과 박두만 둘 다 틀렸듯이.
여기까지 잡설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다 인도 생각이 나서 잠깐 사진을 보다가 믿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매혹시켰던 인도에서의 여정. 행복한 추억.
소형 캠코더 하나만 가지고 다큐 찍겠다고 아시아 전체를 유랑하던 날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다시 인도를 간다고 해도 그와 같은 경이로운 체험을 쌓지는 못할 거야.
첫 사랑은 지나갔다.
아잔타 말고 힌두교 석굴인데
이름을 까먹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유적지었다





슬럼톡 밀리어네어에 나오는 추후 해변.
외지인들의 관광지가 되버린 칸쿤도 좋지만
현지인들의 바다인 이 더러운 바다가 나는 더 정감이 갔다.


20대의 나.
함피.
독특한 양식의 힌두교 신전들.
중남미와 인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종교가 생활 안에 침투되어 있는 정도였다.
중남미의 카톨릭 또한 종교적인 의식을 엄격히 따랐지만 인도처럼 종교가 생활 안으로 들어 와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인도에서 종교는, 신은 생활 안에
인간들과 같이 생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