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2.3.
새벽 5시부터 잠을 뒤척였다. 아직 시차적응이 완료되진 않은 것 같다. 약간 피곤한데 깊게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리고 너무 배가 고픈데 여긴 새벽에 나가서 무언가를 사 먹을 수가 없다. 그래도 참고 참다 보니 8시 아침 시간이 와서 부랴부랴 호스텔 아침 식순인 빵 조가리를 먹었다. 아, 버터 덩어리 빵들. 비행기 탈 때 기내식부터 4연속 똑같은 빵 조가리 버터 덩어리 먹다 보니 참 물린다. 너무 맛이 없다. 맛이 없는 것도 그렇고 속이 살살 아파온다. 역시 버터 소화는 내게 무리인가? 라는 고민을 하던 찰나. 그나마 30분이 지나자 속이 진정되온다.
속이 진정되자 오늘 구경거리를 위해 100배를 본다. 현재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잇는 지 도저히 모르겠다. 론리 지도를 보자 이 멕시코 시티라는 게 어떻게 생겨먹은지 그나마 이해가 간다. 역시 론리를 사서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100배 가자고 만이라도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어네 잠깐 이야기한 여자인 친구가 같이 나가자고 한다. 멕시코 학생증 만들 건데 같이 만들어서 투어하자고 한다. 나쁠 것 없는 제안이니 바로 오케이 한다. 이 친구가 사진으로 그 곳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 지 잘 안다고 하니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세비야 역으로 가 학생증 만드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른다. ????? 아무런 기척도 없다. 이 친구가 왜 안 여냐고 주위 행인에게 물어보니 무슨 페스티발 한다고 오늘 안 열고 내일부터 연단다.
하는 수없이 발 걸음을 돌리고 차뿔테뻭 공원으로 향한다. 광장이 참으로 길다. 옆에서 스파이더 맨 놀이 하는 꼬맹이들을 보고 계속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배가 고파온다. 그래도 일단 무슨 박물관 하나라도 보자고 들어가려 하는데? 어라? 이것도 문을 닫았다. 또 왜 닫았냐고 물어보니 오늘은 월요일이라 다 휴관일이란다. 내일 9시에 오란다. 아.......... 그 때 시간은 1시.
오전을 이렇게 낭비하는 구나. 이 여자인 친구가 이리 된 거 맛있는 거 먹자고 해서 한국 음식을 먹으러 한인촌을 들렸다. 참으로 많은 한인 상표를 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민속촌이라는 곳을 찾았다. 음식이 맛있었다. 빵만 먹다가 밥을 먹으니 참 맛있다. 아, 외국에 나오면 이렇게 애국자가 되나 본다.
암튼 그렇게 하고 소깔로를 넘어 대성당을 가본다. 대성당까지 걸어가는데 이제 슬슬 졸려온다. 아직 시차적응이 다 안 됐나 보다. 어쨌든 대성당 안을 보고 그러는데 예수 그림에 금박질을 칠해 놓은 게 참 많다. 여자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예수님의 성광? 예전에 예수님 얼굴을 직접 그리지 못했을 때 그 가호를 보여주기 위해 표현한 거란다. 대성당 안에 다양한 금박질을 한 예수님 얼굴 및 11대 성인의 얼굴, 그리고 예배당이 있었다. 볼 거리는 많지만 죄다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거 뜻을 알아야 설명을 하든 말든을 하는데 그게 좀 아쉬웠다. 또 하나의 아쉬움 거리는 이거 촬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 대한 고민이 계속 든다는 것. 안의 내적 갈등이 계속 내 안을 지배한다. 갑자기 하이데거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
신전, 대성당, 서사시, 연극, 그리고 기타 예술작품들은 그 문화에서 장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삶만을 떠받들고 주목하게 해준다.
예술작품이 하는 일이란 우리에게 세계를 열어주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해설자들은 그 문화에서 의미 있는 것에 주목하게 해주고 그것을 다시 새롭게 만든다.
신이 배후관계에 있고 예수가 율법에 종속된 유대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면 사도 바울이 해설자로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데 밑거름을 쳤다. 마음의 내면화, 예전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도 소리 내어 읽었다. 예전에는 마음의 죄를 묻지 않았는데 이제는 마음의 죄를 묻기 시작했다 그것이 예수 이 후 바뀌어진 기독교. 율법주의에서 탈피한 기독교
기독교가 자신만이 참된 신앙이라 고집할수록, 그것은 더욱 고립에 빠질 것이고 공동체 정신을 잃을 것이다. 오냐하면 기독교가 초월적이고 신성한 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여기 지상에 이미 주어져 있는 공동체적 행복과 다양한 선들은 포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성당 밑에는 아즈텍의 대 피라미드가 있었다고 한다. 그 위에 스페인 선교사들이 그들의 신앙을 부정해 버리고 1424년부터 약 300년에 걸친 대공사를 시작한다. 그래서 이 대성당에는 다양한 시대의 기독교 양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유리를 통해서 밑에 남아있는 아즈텍 문명 양식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카메라로 찍히지 않는다.
이 땅의 뿌리였던 원주민들을 무시한 대가를 받는 걸까? 대성당은 조금씩 기울고 있다. 저 침을 보면 매번마다 중심을 가리키는 침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즈텍의 저주일까? 참으로 신비하다.
한참동안 대성당을 보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다양한 공연이 있었다. 재미었다. 그것보다 신기한 건 거리에서 대놓고 스킨쉽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것. 여기는 태양, 정열의 나라인가 보다. 어쨌든 열심히 구경을 하고 혼자 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잘못 된 거 같다. 먹을 때부터 느끼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먹고 난 후 속이 괴롭다. 결국 배설을 하고 나서야 속이 진정이 된다 속이 약간 부은 느낌이 난다. 소화 불량. 빵과 버터를 먹지 말라는 계시다. 안 먹는게 상책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다.
비참한 노동의 현실. 노동에서 벗어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은 한 걸까? 난 나의 욕망을 밝힘으로써 많은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도 그만두면 편해질 줄 알았어. 그런데 상황은 그게 아니야. 얻는 게 있는 반면, 오늘 산책하다 느낀 것처럼 순간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그것 말고도 부모님의 실망, 내 사회적 위치 등 잃는 것도 있어. 니체가 말한 단독자로서의 개인이 내가 나아가야 할 이상인 걸까? 난 공동체 속에서 살고 싶은데 그럼 다시 노동의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노동의 세계는 다시 또 그렇게 비참할까? 많은 의문이 든다.
그렇게 난 노동의 세계에 있을 때 이 여행만을 꿈꿨지. 죽기 전에 한 번만 중남미 땅을 가보고 싶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을 강행했지. 이 여행 또한 일종의 사치일까? 나에게 새로운 사회를 보는 안목을 줄까? 편하고 여유로워서 좋긴 한데 아직은 의문점이 든다 좋은 동행을 마나서 여행하니 편하기도 했고 좋기는 하다. 먹는 것 또한 큰 즐거움. 감각의 충족이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인 걸까? 그렇다면 소비만이 우리에게 이상인 걸까? 그런데 여행도 하다 보면 지겨워지잖아. 그건 최선이 아니야.
지금은 그냥 현재를 즐기고 있다. 미래는 모른다. 미래는 그 때 가서 생각해 봐야 겠지. 그저 앞으로 다시 못 올 인생의 이 시간. 아프지 않고 잘 즐길 수 있기만을 바랄 뿐. 그게 내 바람이다.
오늘 쓴 돈. 90페소-과자 2개+햇반, 물 10.5+11.5 2개 70-맥주 한 병 및 아메리카노. 5페소 토이 스토리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준 팁. 53페소-중국 음식점 밥 +콜라(먹고 배탈 남)=240페소(19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