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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3. 03:45 latin america/쿠바

쿠바 산타클라라에는 체게바라의 무덤이 있다. 피델과 함께한 혁명의 성공 이 후 체게바라는 피델에 이은 제 2실권자가 되어 경제정책을 주도했다고 한다. 러시아, 북한, 동유럽 등 당시 공산주의 국가를 순방하고 난 후 그는 새롭게 쿠바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이 놀이가 되기를 바랐던 그의 이상주의적 경제정책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고 그는 이런 직책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밑의 장문의 편지를 피델에게 남기고 아프리카 콩고로 떠난다.

체 게바라가 피델에게 남긴 장문의 편지. 산타 클라라 체게바라 무덤에 가면 있다. (무슨 말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승리의 그 날까지 영원히

란 멋진 말을 남긴 체 게바라. 콩고에서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자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 간다. 남아메라카 중심의 볼리비아 혁명이 성공하면 남아메리카 전역으로 혁명의 불꽃이 퍼질 거란 이상을 가지고 혁명에 임하지만........

 쿠바와는 달리 현지인들의 낮은 도움, 그리고 고산지대에서의 게릴라 전에 대한 낮은 이해도, 결정적으로 그의 천식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미국 CIA와 볼리비아 군인들의 협동 작전에 의해 생포되고 현장에서 사살된다.


 당시 나이가 37세.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간 혁명가의 최후였다.


 그가 죽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쿠바에 그의 손만 잘라서 보냈다는데.....


이 무덤은 90년대에 쿠바에서 파견한 그 조사단이 극적으로 그의 무덤을 발굴하여 모든 시신을 수습하여 

 무덤에 안치시킨 거라고 한다.


체 게바라와 혁명 전사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무덤. 이 뒤의 건물에 들어가면 체게바라가 게릴라 전을 할 때의 사진, 체 게바라가 어렸을 때의 사진이 많이 있다. 그러나 사진 촬영 절대 금지이기에 찍을 수는 없었다. 당시 게릴라 전의 루트와 체 게바라 이 외 다양한 혁명 전사들의 사진이 있었다, 유명한 혁명의 불꽃도 있었지


여기까지는 불처럼 살다간 혁명전사들의 이상적인 이야기. 

 


음악과는 별개로 내가 쿠바를 들렸을 때 사회주의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오직 아침식사에서만 사회주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디 까사를 가든 매번 똑같은 재료로 나오는 아침. 그 아침이 배급식으로 만든 거라는 걸 아는덴 4일이면 충분했다.

그 외엔 무료 교육(교복은 다 공짜로 챙겨주는 것 같더라),무료 의료도 보고 싶긴 했지만 병원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외국인은 다쳐도 돈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오히려 말레콘에서 만난 쿠바인은 자기들은 죽도록 일해봐야 한 달에 100쿡도 못 번다는 얘기를 했다. 초대장이 없음 이 나라를 벗어날 수도 없고. 우리가 봤을 때는 음악의 나라, 혁명의 나라인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답답함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귀찮게 관광객들에게 따라붙고 가지고 있는 직업 버리고 벌이가 좋은 택시 기사를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시가를 몰래 빼돌려 관광객에게 파는 것도 월급 대신 돈을 벌어 놓을 모양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피델이 물러나고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집권하면서 점점 배급식을 줄이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적어도 내가 봤을 떄 아바나는 자본주의 도시와 비슷했다. 왠지 아바나를 기점으로 중국식 자본주의를 따라갈 것 같은 느낌인데....앞으로 쿠바가 어떻게 변할 지......


적어도 말레콘 만큼은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게 내 소박한 바람이다. 












이 꼬마가 살 쿠바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posted by 꿈꾸는 카메라